전라남도를 가로지르는 영산강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제공하여 문화 발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영산강유역에 사람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때는 약 8만 년 전으로, 이후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풍부한 해양 자원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경이 시작된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세력을 키운 여러 집단은 점점 정치적 성격을 지닌 큰 집단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대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삼한三韓이 있었고, 그중 경기도·충청도·전라도지역에 자리 잡은 마한이 가장 강성하였습니다. 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체였던 마한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한 사람들은 가을 추수 후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구슬을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영산강유역에는 고대인들이 남긴 수백 기의 고분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무덤에는 독널, 즉 거대한 항아리 2개를 붙여 만든 관이 묻혀 있습니다. 커다란 독널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로 안에서는 금동관과 금동신발, 봉황무늬고리자루칼 등 화려한 유물도 발견됩니다. 영산강유역의 독널무덤은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산강은 예로부터 서남해안을 연결하는 중요한 뱃길이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청해진淸海鎭에는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던 배들이 드나들었으며, 고려시대 삼별초三別抄는 몽골과의 항쟁을 위하여 진도에 자리 잡기도 하였습니다. 영산강의 중심에 위치한 나주는 뱃길의 중심지로,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모였으며, 뛰어난 학자와 많은 명사들을 배출하였습니다.